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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작품이 단순한 로맨스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봤지만, 퀴어물인 점을 알고 나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주변에 흔한 케이스가 아니고, 저 스스로도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이라 작품에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저의 공감과는 별개로, 큰 사랑의 틀에서 본다면 성이 무슨 상관일까 또는 이들의 사랑이 보통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재희의 결혼식장에서 영의 독백으로 시작됩니다. 재희는 주인공인 영의 이성친구이며, 무성한 소문은 개의치 아니하고 문란한 삶을 살아오다가 한 남자와 결혼을 합니다. 남편은 건실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남자이고, 재희와 영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투하기도 합니다. 재희와 영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집에서 동거했습니다. 영이 동성애자 이므로 가능한 관계였습니다. 그 둘은 오늘 만난 남자에 대해 대화를 하고, 그 남자와의 잠자리는 어땠으며, 크기는 얼만한지 하는 문란한 대화를 통해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20대를 같이 헤쳐나가는 끈끈한 그들만의 동료애, 전우애가 그들의 관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단어들이 센슈얼 하고, 비속어도 많이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다소 거북하고 노골적일 수 있지만, 작가 특유의 코믹하고 센스 있는 표현들 덕분에 담백하게 읽혔습니다. 또한 인물 묘사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이 주를 이루어, 인물 한 명 한 명이 머릿속에서 잘 그려졌습니다. 특히, 작가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상황들도 상당히 재치 있고 유머스럽게 표현하여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동성애에 대한 얘기들도 일반인들이 쉽고 깊숙이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 만나온 남자에 대한 배신과 부모님의 이혼, 엄마를 향한 복수심 등 영이 가지고 있는 아픔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암에 걸린 무기력한 엄마의 모습과 과거 자신에게 모질게 행동한 엄마의 모습이 교차되는 내용들이 상당히 대조적이며 모순되는 감정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본 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성경구절을 강요하는 엄마의 모습은, 꽤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동성애는 주인공 영에게 감정적이고 물리적인 탄압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억압과 폭력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영을 더욱 성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인 영은 철학수업에서 만난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이 남자도 영을 좋아하고 있었고, 둘은 오랫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학생회장 출신이며, 운동권 인사였던 이 남자는 묵묵하고 뒤를 잘 돌아보지 않는 어두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은 그에게서 억압당하고 탄압받는 동성애자인 자신의 모습을 봤다고 합니다. 어둡고 투쟁적인 그가 자신과 닮아 있다고 생각하며 서서히 빠져들게 됩니다. 저는 다소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의 모습에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들의 눈에는 일반인의 사랑이 일반적이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둘의 사랑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영의 감정과는 별개로 이 남자는 사랑을 부인하면서 둘은 작별합니다. 이 남자에게 이 둘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면 무슨 관계였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5년 후에 남자는 영에게 다시 편지를 보내지만, 영은 그 편지를 버리면서 관계의 끊을 놓아버립니다. 영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규호와의 사랑은 이전과 다르게 밝고 활발하며, 일상적으로 그려집니다. 제주 출신인 규호는 덩치가 크고 사투리를 쓰며 생활력이 강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영의 집에 처음왔지만, 영이 일어나기 전에 음식을 만들고 카펫을 사 와서 깔아 두기도 합니다. 상경 후에는 간호조무사를 따서 성형외과에 취업하기도 합니다. 또한, 영이 가지고 있는 질병을 이해해주기도 하고 영의 찡그린 표정을 약지로 살살 펴주기도 하는 자상한 사람입니다. 둘은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되지만, 결국 규호가 중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헤어지게 됩니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영과의 방콕 여행에서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마무리됩니다. 흔들리는 배, 쏟아지는 스콜들, 천장에 돌아가는 휀은 짧고 불안정하고, 영원하지 않은 그들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참 아프고 쓰라린 사춘기의 사랑 같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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